해녀와 무속은 제주도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두 축입니다. 해녀는 오롯이 여성의 힘으로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며, 무속은 자연과 인간 사이를 잇는 전통 신앙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최근 들어 기후변화와 해양 생태의 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이 두 문화유산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녀와 무속이 어떻게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 속에서도 존속하고 있는지, 또한 민속신앙으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기후변화와 해녀 전통의 변화
기후변화는 해녀들의 삶과 바다 환경 모두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 수온 변화, 해양 산성화 등은 해양 생물의 서식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해녀들이 의존하던 조개류와 해조류의 서식 밀도와 위치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과거에는 제주 연안의 얕은 해역에서도 충분한 수확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수확량이 현저히 줄었고, 그나마 남은 자원도 깊은 바다 쪽으로 옮겨가는 실정입니다.
특히 전복, 소라, 해삼 같은 고부가가치 수산물은 기후 변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종들 중 하나로, 수온이 상승하면 산란과 성장이 어려워지고, 개체 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빈번하게 관측됩니다. 이러한 생태 변화는 해녀들의 물질 작업 시간을 늘리고, 물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령의 해녀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됩니다.
이와 함께 전통적으로 구전되던 바다의 지식들도 예외 없이 영향을 받습니다. 조류의 흐름, 물때, 바람의 방향 등은 해녀들 사이에서 중요한 생존 기술이자 문화의 일부였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이런 자연 리듬이 파괴되면서 오래된 지식들이 무력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젊은 세대 해녀들이 이런 전통지식 대신 GPS나 기상 앱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기후변화는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닌, 해녀 문화 전체의 존속과도 연결됩니다. 제주도에서는 해녀박물관, 해녀학교 등을 통해 전통을 보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기후 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러한 노력도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의 보존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연계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해양 생태와 무속 의례의 상관관계
무속은 자연을 신성하게 여기고, 모든 생명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특히 바다와 관련된 무속은 제주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 요소이며, 이는 해양 생태계와의 깊은 연결성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예가 ‘용왕제’, ‘해신굿’, ‘풍어제’ 등으로, 바다의 신에게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집단적 의례입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행위를 넘어 공동체 구성원의 안녕과 바다 생명의 조화를 바라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해녀들은 바다에 들어가기 전, 바당할머니에게 기도를 올리며 “오늘은 바다가 허락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습니다. 이런 신앙은 수천 년 동안 제주 여성들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 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여성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제주 문화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해녀들이 물질을 나가기 전에 공동으로 굿을 치르고, 제를 올리는 모습은 단순한 형식이 아닌 생활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생태계 변화는 이러한 무속 의례의 의미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해양 생물이 급감하면서 더 이상 ‘풍어’ 자체가 불가능한 해역도 존재하며, 이로 인해 굿의 대상과 내용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용왕에게 기원하는 대신 바다 정화를 위한 의례나, 바다에 생명을 돌려주겠다는 선언의 의미가 강조되기도 합니다. 굿의 목적이 생존 중심에서 보전과 회복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제주 지역 무속인과 환경 운동가들이 협력하여 해양 생태 보전 캠페인을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무속의 철학이 현대 환경운동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협업은 의미가 큽니다. 실제로 ‘해녀굿’에서 플라스틱과 해양 쓰레기를 정화하는 퍼포먼스를 넣는 등의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는 무속이 여전히 유효한 문화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해양 생태계 보전에 무속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속신앙으로서의 해녀문화 계승
해녀문화는 단순한 직업군의 전통을 넘어, 깊은 신앙적 의미를 가진 민속문화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도의 해녀들은 ‘물질’이라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그 시작과 끝에 항상 무속 의례를 동반해 왔습니다. 이는 그들의 생계가 자연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바당할머니’에게 올리는 제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바다를 생명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철학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민속신앙은 공동체 중심으로 이어지며, 해녀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넘어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를 들어, 해녀 공동체 안에서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굿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바다에 대한 공포와 경외를 신앙적으로 해석하며 극복합니다. 이는 무속이 단지 미신이 아니라, 정신적 치유의 방식이자 공동체 결속의 수단으로 기능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해녀 공동체의 고령화는 이 같은 민속신앙의 단절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물질 작업에 대한 관심이 낮고, 무속에 대한 이해도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전통신앙이 유지되려면 단순히 전시하거나 축제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삶의 일부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합니다. 관광지에서의 퍼포먼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지역 문화 프로그램과 연계되어야 지속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최근 ‘해녀문화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해녀굿을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제주대학교와 지역 문화단체들이 협력하여 해녀 신앙과 무속을 아카이빙하고, 디지털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이 문화를 삶 속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제주도민으로서, 해녀와 무속은 단지 구경거리나 전통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 그 자체입니다. 할머니, 어머니, 이웃이 해녀였고, 마을에서 함께 굿을 올리며 평안을 빌던 기억은 우리의 뿌리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다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가 예전 같지 않고, 해산물이 점점 사라지며, 함께 굿을 올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줄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할 것인지, 아니면 이 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지 말입니다. 해녀와 무속은 자연과 사람, 그리고 공동체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아름다운 제주만의 문화입니다. 이 전통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단지 보존이 아닌 ‘삶 속의 재생’이 필요합니다. 제주도민으로서, 이 유산을 지키고 이어가는 데 앞장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