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와 무속신앙은 제주도의 정체성을 이루는 두 축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다에서의 생존과 마을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온 이들은 제주 지역민의 역사와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화의 물결과 함께 전통 직업으로서의 해녀와 무속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해녀와 무속신앙의 문화적 가치와 현재 처한 현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해녀: 제주 바다와 생명을 잇는 여성들
제주의 해녀는 단순히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업 종사자를 넘어섭니다. 그녀들은 바다와 생명을 잇는 중개자이자, 제주 여성의 강인함과 공동체 중심의 삶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깊은 바닷속에 잠수해 전복, 소라, 미역 등을 채취하는 기술은 수십 년에 걸쳐 전수되며 발전해 왔습니다. 해녀의 하루는 이른 새벽 바다 기도를 시작으로, 조류와 날씨를 읽고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구역을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러한 생존 기술과 해양 지식은 오로지 경험과 전통에 의존해 왔으며, 이는 해녀 문화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합니다. 해녀의 평균 연령은 70세를 넘었고, 새로운 세대의 유입은 거의 없습니다. 육체적 고됨, 소득 불안정, 산업구조의 변화 등은 해녀라는 직업을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1960년대만 해도 약 2만 명에 달하던 해녀는 2023년 기준 3,000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특히 서귀포, 성산 일대에서도 해녀의 수는 해마다 줄고 있으며, 실제로 20~30대 해녀는 전무한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해녀 전승이 단절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지역사회 역시 바다를 매개로 한 공동체 구조를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직업 하나의 소멸이 아니라, 제주의 정체성과 지역 생태계 문화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해녀는 이제 관광자원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진정한 해녀의 삶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무속신앙: 공동체와 자연을 잇는 문화적 연결고리
무속신앙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형태로, 인간과 자연, 신과 사람, 조상과 후손의 관계를 중시하는 고유의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 무속은 여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해녀 문화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실제로 해녀들은 바다에 들어가기 전 ‘굿’을 통해 무사안전을 기원하고, 풍요를 바라는 제의를 지내왔습니다. 이는 바다가 생명을 주는 존재이자 동시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두려운 자연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무속은 이와 같은 인간의 두려움을 다스리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제주의 무속은 ‘본풀이 신화’와 다양한 신격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각 마을의 신당과 제사문화, 굿을 통해 구현되었습니다. 특히 ‘영등할머니’과 같이 바다와 관련된 신격은 해녀들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무속인 역시 여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해녀들과 자연스러운 유대가 형성되었으며, 마을에서는 무속인이 해녀의 안녕을 기원하고, 신의 뜻을 전달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무속 역시 위기입니다. 1990년대 이후 도시화와 종교 다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무속은 ‘비과학적’이라는 인식 속에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또한 TV나 SNS에서 소비되는 방식도 왜곡된 이미지로 자리 잡아 실제 무속 문화의 깊이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도 더는 굿을 보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으며, 젊은 세대는 이 전통을 접할 기회조차 없어진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무속은 더 이상 공동체 내부의 조율자, 치유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승자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해녀와 무속: 제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보호 대책 필요
해녀와 무속은 개별 문화가 아니라, 제주라는 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공동체적 유산입니다. 이들은 바다를 중심으로 한 삶과 인간의 생존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가치를 실현해 왔습니다. 따라서 해녀와 무속은 단순히 전통으로 남겨야 할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환경 위기, 공동체 해체, 정체성 상실이라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내포한 문화 자산입니다.
제주 해녀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질적 보호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은 있지만 해녀 수급, 전통 기술 전수, 지역 내 고령화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안이 부족합니다. 무속신앙도 일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제사나 굿이 지역 축제의 일환으로 형식화되며 실질적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보호 대책은 문화 콘텐츠화 중심에서 벗어나, 실제 해녀와 무속인의 생계, 활동, 전승 조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해녀학교 운영 확대, 무속신앙 기록 보존 사업, 해양문화 박물관 활성화 등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해녀와 무속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이 전통과 연결될 수 있도록 교육 및 홍보도 강화되어야 합니다.
제주에 살며 매일 바다를 마주하는 우리 도민에게 해녀와 무속은 단순한 ‘옛 문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숨결이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삶 깊숙이 스며 있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해녀가 바다로 나가는 모습, 마을굿에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는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이 소중한 전통은 사라질 것이며, 그 책임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해녀와 무속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제주라는 땅이 계속 우리에게 의미 있으려면, 이 문화들과 함께 숨 쉬어야 합니다.